"고성" 통권 357호 입교188년(2025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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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9 14:11
11월 월차제 신전강화
믿고 따르는 길
오대성(웅천교회 전 교회장)
안녕하십니다. 천리교 웅천교회 전 교회장 오대성입니다. 오늘 고성교회장님과 사모님께서 고맙게 이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도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4박)
제가 교회장을 한 지 42년째입니다. 지난 11월 10일 교회장 취임봉고제를 통해서 큰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세월이 물 흐르듯이 온 것 같습니다. 어버이신님의 수호, 교조님의 보살핌, 주위 모든 분의 성원 속에서 무사히, 큰일 없이 온 것에 대해서 아주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희 초대 회장이신 아버님께서 출직하시는 날, 1980년 12월 31일인데 “내가 오늘 12시 안으로 출직을 한다. 원단제를 준비하지 말고 내 초상 준비를 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낮 11시 반쯤 됐을 때, 머리맡의 괘종시계를 보시고 깜짝 놀라셨습니다. 출직하시기 전에 눈이 흐려지시면서 “이생이 멀어지고 후세상이 가까워진다.”라고 하시면서 12시가 넘었는가 해서 깜짝 놀라셔서, 옆에서 “11시 반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또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숨도 차고 하시는 것 같아서 “그만하시지요.” 했더니 “신님이 숨을 쉴 수 있게 수호해주시니 내가 숨을 거둘 때까지는 신님 말씀을 전하고 가는 것이 내 사명이다.”라고 하시다 11시 45분이 되자 “내가 이제 가야 하겠구나.” 하시면서 바로 누우시고 숨을 한 번 쉬시고 숨이 끊어지셨습니다.
그때를 생각해 보면, ‘나도 신님이 언제 데려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교회장을 도와가면서 신님의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섭섭하다거나 마음의 동요 없이 담담한 마음으로 안팎으로 히노끼싱할 것은 하고 봉고제 마무리 정리를 하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에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신앙을 하게 된 동기는, 그때가 33살이었습니다. 좋은 직장에서 직장 생활하다 갑자기 즐거운 삶이란 가르침이 너무 좋아서 ’아, 내가 천리교 교회장을 해야겠구나.‘ 하고 회사에서 근무하는 중에 깨달았습니다. 당시, 신상이나 사정도 없었습니다. 아버님께서 해방 전부터 고생해서 오신 길을 잇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두 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버님이 출직하시고 난 후에 제가 시작을 했습니다. 그동안 직장생활,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아무리 많이 배우고 돈이 있고, 편하게 부자로 살고 있더라도 ‘즐거운 삶’이라는 뜻을 모르고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사 안에서도 여러 직종이 있습니다. 여름에 더운데 땅을 파면서 일하는 직종, 겨울에는 추워서 손발이 시리면서도 일을 하는 직종에서 고생하면서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즐거운 삶이라는 것을 모르고 지내고 있다고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즐거운 삶의 뜻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내 한평생의 소명이구나 하고 교회장을 걸어가기 시작한 것이 42년의 세월이 흘러왔습니다.
교조전일화편에서 하신 말씀이 “부모에게 인연을 나타내어, 자식이 그것을 보고 따라오기를 신은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1대에서 2대, 2대에서 3대로 리가 깊어지는 거야. 리가 깊어져서 영원한 리가 되는 거야. 각자의 마음에 따라 1대로 끝나는 사람도 있고, 2대, 3대에서 끝나는 사람도 있다. 또 영원히 이어지는 사람도 있다. 리가 이어짐으로써 악인연의 사람이라도 백인연으로 되는 거야.”(90. 1대에서 2대로)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런 교조님의 말씀을 잘 새기고 이어가고 계시죠? 이어지지 않으면 악인연이 백인연이 될 수 없다고 교조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세계 인류를 구제하기 위해 하강했다. 미키를 현신으로 삼아서 세계 인류를 구제하겠다고 선포하신 그 말씀에는 세계 인류는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버이신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그 뜻이 즐거운 삶을 자녀들이 누리는 것을 보고 어버이도 같이 즐기려고 인간을 만드셨고 우리가 살아가는 목표도 바로 ‘즐거운 삶’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즐거운 삶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신상과 사정입니다. 이 악인연이 오기 때문에 진정한 즐거운 삶을 누리고 있지 못한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악인연인 신상과 사정을 해결해야겠다. 이것이 바로 구제받는다는 것입니다. 또, 상대에게도 여기서 벗어나게 해야겠구나. 구제받게 해야겠구나. 하는 것이... 나 자신과 우리 가정과 세상의 모든 사람을 구제해서 해결해야만 진정한 즐거운 삶이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맙게 먼저 인도되어 깨닫고 실천해 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즐거울 때, 기쁠 때, 괴로울 때, 힘들 때도 있습니다. 이 속에서 교조님이 가르쳐주신 하나하나의 가르침을 마음에 다스리면서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3대 진주님께서 회갑을 맞았을 때, 현 4대 진주님의 결혼식을 그해에 올렸습니다. 그때 3대 진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읽으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60년이 지나면 간지가 한 바퀴 돌아 61년째에는 같은 간지가 되는데, 이를 환력이라 합니다. 내가 태어난 해가 임신년인데 금년 간지가 임신년이므로 환력을 맞은 것입니다. 1932년 7월 7일에 태어나서부터 60년 동안 나는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끊임없이 받아왔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유년시절에 몸이 약해 무슨 일에든지 적극성이 없었습니다. 그런 내가 회갑을 건장한 몸으로 맞았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지난 세월들을 돌이켜보면 “잘도잘도 여기까지 따라왔구나” 하는 노래가 귓전을 맴돌며, 그것은 참으로 어버이신님의 크신 어버이마음과 교조님의 다함없는 자비심으로 충만된 나날이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노래 다음에는 “진실한 도움이란 이제부터야”라는 구절이 이어지는데, 이처럼 앞으로도 계속하여 내 마음에 따라 수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게다가 금년에는 장남 젠지가 결혼하는 고마운 수호도 받았습니다. 이것으로 나는 나까야마가가 언제까지나 구제한줄기의 임무를 수행하는 은혜보답의 길을 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나까야마가에서 부모가 살아 생전에 장남의 결혼을 보게 된 것은 입교 이래 내가 처음이라는 사실에 생각이 미치니 여러가지 감회가 가슴을 스칩니다.
증조부 슈우지님의 결혼 때에는 아버지되시는 젬베에님이 출직하여 계시지 않았고, 다마에 할머님의 결혼 때에는 양친 모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쇼오젱 아버님 때에도 할아버지가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았으며, 나도 세쯔 어머님의 결혼 축하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옛날을 회상하면서 윗대 조상님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 현재의 우리들은 참으로 행복한 가족이라는 느낌이 들어, 집사람과 함께 이를 기뻐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조상님들이 어떠한 마디에서도 어버이신님의 수호를 의심하지 않고 교조님을 의지하며, 오직 구제한줄기의 길을 걸으신 정성의 결과로서, 155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러한 행복을 맛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길은 점진적인 길입니다. 어버이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어버이가 되어 집안은 영원히 이어지는 것입니다. 입교 당시 어버이신님은 “…지금은 여러가지로 걱정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지만 20년, 30년이 지나면 모두들 과연 그렇구나 하고 생각할 날이 올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진실한 이 길을 대대로 이어가며 즐겁게 용솟음치며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즐거운 날을 볼 수 있다는 확고한 하나의 증거를 우리들은 경험한 것입니다.(『나날을 즐겁게』)
이렇게 회상하셨습니다.
저도 아버님, 저, 큰아들, 이렇게 해서 아들로 이어져 나오고 있습니다. 생각을 해보면, 악인연이라는 부분이 생활 속에서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도 지금 다리가 안 좋습니다. 다리가 아플 때 꿈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세로 50cm 가로 30cm 되는 선반이 있는데, 옛날에 아버지 어머니 있는 방에서 깨끗이 청소를 다 했는데 마지막으로 그 선반 위에 청소가 되었나 하고 의자를 딛고 올라가 손으로 훔쳐보니 먼지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말고 내가 치워야겠구나.’ 하고 꿈을 꾸고 난 후에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윗대부터 내려오는 인연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50cm 30cm 정도의 먼지가 있다고 해도 잠시, 1분도 안 되어 닦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티끌이 있는 것도 현실에서 인연을 닦는 것은 2년째 오지만 안 닦이고 있습니다. 이 인연이라는 것은 한 꺼풀의 티끌이 아니라 첩첩이 쌓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아홉 가지 도구에서 나타난 이 부분 저 부분에서 오는 신상이나, 살아가는 데서 오는 사정들은 당대의 부분이 아니라 몇 대에 걸쳐서 오는 것입니다. 전생과 전 전생부터요.
그래서 교조님께서도 그랬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 이 사람은 삼생의 인연이 맺혀있어서 이렇다. 그래서 육좌근행을 올리라고 했습니다. 근행으로써 만가지 구제를 풀어갈 수 있습니다. 근행으로써 내 마음의 티끌을 닦아가는 것입니다. 그 티끌 때문에 삼생의 인연이 있어 생사의 갈림길에 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연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조님께서 1대에서 2대로, 2대에서 3대로, 영원히 이어져 가야 악인연이 백인연이 된다고 하신 겁니다.
그러나 마음에 따라 할아버지 대에서 끝나는 사람도 있고, 아버지 대까지 와서 끝나는 사람도 있고, 손자로 이어져 영원히 이어지는 사람도 있다. 각자의 마음에 따라서입니다. 마음에 의해 풀어갈 수 있는 겁니다. 마음이 안 되면 안 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이어가고 있습니다만, 이런 확고한 마음작정이 되어 있습니까?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 확고한 신념을 가지지 못하면 이어갈 수가 없습니다. 죽고 나면 그만이지 라고 하는 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천리교의 가르침은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혼에 담겨진 티끌, 좋은 것, 나쁜 것을 가지고 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나타나지기 때문에 이생에서 우리에게 부여된 인연은 최대한 끊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다리 아픈 것을 ‘될 대로 돼라.’ 하는 식이어서는 내생에 다시 가지고 와져서 또 불편한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 때는 아버님께서 단명의 인연을 끊어주셨습니다. 저희 집안은 50 이전에 모두 출직했습니다. 남편이 일찍 출직하면 결과적으로 부인이 자식을 데리고 고생해야 합니다. 부인이 일찍 출직하면 남편이 자식과 고생해야 합니다. 자식이 먼저 출직하면 부모의 가슴에 평생을 안고 가야 합니다. 진정한 즐거운 삶이 오지 않습니다. 고맙게도 그것을 끊어주셨고 그다음에 남았던 신앙했던 초대가 다리가 아팠던 것이 저에게 내려온 것입니다. 저의 대에서 끊지 않으면 다음 대에 이어지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버이가 함께 해주십니다
이 신앙이라는 것은 티끌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청소해야 합니다. 이 티끌을 다른 말로 악인연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끊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것에 매진해야 합니다. 이것을 신님을 보고 교조님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 어버이가 도와주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가는 길이 아니고 어버이가 도와줘서, 같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내 마음에 확고한 마음작정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먼저 나 자신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교회장이 되겠다고 작정해서 강습소에 가서 3개월을 마치고, 3개월 만에 결혼하고 바로 터전을 갔습니다. 당시 장남을 잉태했던 집사람을 강습소로 보내고, 강습을 마친 3개월 후에 저도 터전에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때 40년 동안의 이 길의 운명을 정할 수 있는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님 보셨습니까. 교조님을 보셨습니까. 저는 바로 교조님을 뵙고 체취를 느꼈습니다. 교조전에서 별석 3석을 마치고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드리니까 오른쪽 어깨를 두 번 두드리면서 “이제 왔네. 참 잘 왔구나. 이제 왔구나.” 하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 이상하다 나 혼자밖에 안 왔는데.’라고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봐도 아무도 없습니다. 교조전에는 항상 사람이 이어져 있지만 그때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 이상하다.’ 하고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 교조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습소에서 교조존명의 리로 활동하신다는 공부만 했지 실제로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이게 존명, 혼이 활동하고 계시는 것이구나. 몸은 안 보이지만 그 체취는 느낄 수 있구나. 살아 계시구나. 나를 반가워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계시구나.
그 뒤 수훈의 리를 받고 그다음 날 저녁근행이 끝나고 난 후 교조전에서 손춤 연습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나오셔서 가르쳐 주시는데 20여 명이 둘러싸고 손춤 연습을 했습니다. 교회장이 되어서 신악가도 못 외우고 손춤도 다 틀리고 하는 것이 교회장인가 하는 생각에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그 순간 오른쪽 어깨를 두드리시면서 ‘아무 걱정하지 말고 해라.’ 하는 교조님의 음성과 체취를 느꼈습니다.
이때 저는 모든 시름이 없어졌습니다. 그 후로 40년이 흐르면서 걱정 없이 걸어왔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했으니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왜, 어버이가 계시니까. 즉, 우리의 신앙이 잘못되는 것은 어버이를 잊고 갈 때이지 않은가 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 저러면 힘드는데, 고생하는데, 풀리지가 않는데’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버이와 같이 가는 길입니다. 어버이가 돌봐줘서 가는 길입니다. 쉽게 말해서, 걸음마를 하는 아이를 데리고 갈 때 아이가 “엄마, 다리가 아파서 못 걷겠어요.” 하면 어떻게 합니까. 아이를 보듬든지 업고 가든지 하지 않습니까. 가다가 아이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하면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이 엄마와 자녀의 관계이듯이 교조님과 우리의 관계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구제를 일으키려면
어머님, 교조님 아픕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면 다 가르쳐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 게 우리는 원활하게 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님, 교조님이 도와주셔야 구제가 날 수 있습니다. 구제의 행위는 내가 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어버이가 도와주지 않고서는 절대 오지를 않기 때문에. 오게 하는 것은 바로 내가 신님, 교조님을 믿고 의지하고 가느냐입니다.
믿지 않습니다. 의지를 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님을 믿고 신님을 의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믿고 의지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한국에 있는 천리교가 당면한 과제는 구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구제가 나게끔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제가 나야 자녀가 올 것 아닙니까. 와야 근행봉사자가 생길 것이고 근행봉사자가 생기고 근행을 완성해야 세계구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40여 년을 전도했지만, 안 해도 직접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근행을 볼 수 있는 명맥은 유지해 주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면 안 된다. 더 구제가 일어나야 합니다.
세계 인류 구제이기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많은 구제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우리의 생활에 즐거움이 옵니다. 우리 생활은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 지역, 우리 가정은 어떻습니까. 다 힘들게, 즐겁지 않은 생활 속에 가고 있습니다. 이 즐거운 삶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바로 구제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구제가 일어나야 즐거운 삶이 올 수 있습니다. 진정한 즐거움은 구제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들의 마음이 너무 높아 있지 않느냐. 부족한 자녀라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느냐. 내가 아무리 교회장이 되어 나이가 많다고 하더라도 어버이에게는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버이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항상 경계하고 있습니다. 내가 자녀라야 어버이가 도와주지 내가 자녀가 아니고 다 할 줄 알면 어버이가 도와줄 필요가 없잖아요. 다 알아서 할 것인데. 자기가 다 알아서 해결할 것 아닙니까. 내가 부족한 자녀라는 마음을 확실히 새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부족하다, 항상 의지하고, 할만한 일은 하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항상 여쭤갈 수 있는 마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쭤봐야 합니다. 여쭙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다 알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하는 것이 맞고, 내가 하는 것이 그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쭙지 않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맞다고 하더라도 ‘신님, 이게 맞습니까. 틀립니까. 만약 여기서 제가 틀린 게 있으면 가르쳐 주시고 빠진 게 있으면 알려 주십시오.’ 정확하지만 여쭈면서 갈 수 있는 마음이 자녀로서의 겸손한 마음이 아닌가, 낮은 마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가. 교리를 들으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내가 다 아니까 저 이야기는 아는 이야기인데 안 들으려고 하는 게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터전에 갔을 때, 3대 진주님 누님이 강화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신자분이 교회에 오면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 주어라. 같은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이라도, 실제는 모르고 있을 수도 있고,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서 깨달을 수도 있으므로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 주어라. 우리 교회에서 같은 이야기를 계속해 주고 있습니까. ‘알고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천만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순간에도 어버이마음을 접할 수도 있고 그 마음이 들어갔을 때 혼도 씻어낼 수 있어서 어버이마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더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공부하면서 내가 깨닫고 있는지, 내가 깨닫고 남에게도 깨달을 수 있도록 정말 바르고 정직하게 이야기하느냐 하는 것도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합니다.
나도 보고 정확히 깨달아 주게 해야 하고, 깨닫는데 바르고 정직하게 전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잘 생각해 보지 않으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렇게 알고 있지만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는 거의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지만 이게 실천으로, 행동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한줄기의 정신
구제해야겠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 구제에 나서고 있느냐입니다. 우리는 너무 주위 환경에 빨려 들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교회는 세상 안에 있습니다. 교회장을 하고 용재가 되어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나 자신이 바르게 갈 수 있느냐 없느냐. 그 속에서 바르게 실천하면서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주위에 휩쓸려 있지 않으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어버이신님께서 천지에 내리셔서 미키를 바치라고 했을 때, 남편이 젬베에 님께서 “안 됩니다. 아이들도 어리고, 살림도 살아야 하고, 동네일, 세상일도 봐야 하고.” 하면서 거절했습니다. 그것이 똑같이 현재의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지금 신님 일을 못 하고 있는 사정과 같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집안일 때문에, 정 때문에.
안 가면 안 된다. 이것들이 지금 구제하는데 발목을 잡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마음이 세상 사람들과 같이 가는 환경 속에서 굴러가고 있지 않으냐. 진정한 구제가 일어나겠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 자신도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잘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바뀝니다. 마음 작정을 하고 하려고 해도 주위에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망설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큰 덕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물론 큰 덕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계시기는 하겠지만, 보통은 큰 덕이 없기 때문에) 다른 나쁜 것에 휩쓸리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빠져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큰 물줄기에 작은 물줄기가 빨려 들어가듯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데도 신님 일과 세상의 이치로 볼 때 실제 우리는 신님의 일 쪽에 확실한 마음의 작정이 좀 부족하면 그만 세상에 빨려 들어가고 세상사에 같이 지내게 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어렵지만 우리에게 당면한,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는 신상과 사정, 악인연을 끊지 않으면 진정한 즐거운 삶을 받지를 못하기 때문에 즐거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상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본은 주고받는 것이 인간사입니다. 기본 인간정 입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교조님께서도 항상 무거운 것부터, 신님 쪽부터 생각하고 가야 한다고 일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신한줄기의 정신입니다. 교조님 50년의 길은 바로 그 신한줄기의 길입니다. 아들인 슈지님이나 따님인 고깡님의 문제들도 결과적으로 신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훗날 혼과의 대화에서도 즐거움을 나누고 가셨지만, 현생에서는 고리를 끊으셨습니다.
우리도 거기에 적용해서 나도 그렇게, 신한줄기, 신님 쪽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신님이 하시는 일이 구제한줄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자녀보다 먼저 너희하고 만났다. 만났는데 아직까지 나를 모르고 나의 뜻을 모르는 자녀들에게 너희들이 가서 나의 뜻을 전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교조님이 우리에게 부탁하는 어버이마음입니다. 바로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구제한줄기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길을 가는 데는 걱정 없이 가야 합니다. 100% 신님을 믿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걱정해서는 안 됩니다. 틀려도 괜찮습니다.
저의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터전에 바로 돌아오자 3개월 전, 터전에 가기 전에 전도한 분이 “천리교에 오이소.” 했더니 “거기 안 가요.” 합니다. 그다음 날 제가 터전에 갔습니다. 돌아오니까 그분이 뇌경색으로 중풍이 들었습니다. 말을 못 하고 오른쪽 수족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훈을 내렸습니다. 물어보니 아무 가족도 없이 혼자 있었습니다.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주소, 나이, 이름도 모릅니다. 듣기는 듣지만, 기억을 못하는 상태입니다.
팔을 올려보라니까. 오른팔은 못 올립니다. 발을 올려보라니까 왼쪽 다리는 움직이는데 오른 다리는 안 움직입니다. 오른쪽이 마비됐습니다. 말도 못 하고. 앉는 것조차 힘들어했습니다. 손수건을 내서 깔면서 그때 제게 드는 생각이 ‘나는 단 벌 바지밖에 없는데 바닥에 그대로 앉으면 버리게 되어 내일 입을 옷이 없어 전도를 어떻게 나가노.’하고 망설였습니다. 앉아서 해야 하나 서서 수훈을 내려야 하느냐고요. 그 순간 제가 ‘아이구 바보야. 강습도 받고, 터전에서 교회장 강습도 받고, 교조님께서 물질을 버려서 집착을 버리면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이 밝아지면 즐거운 삶의 길이 열린다고 했는데, 나는 바지 하나 때문에 마음이 안 좋아서 수훈을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느냐는 생각에 잠겨있는 것을 보니 헛배웠구나. 바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손수건을 깔고 앉아서 수훈을 내렸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아픈 부위는 다 내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말 못 하면 입에 내려야 하고, 팔을 못 쓰면 팔에 내려야 하고, 다리를 못 쓰면 다리에 내려야 합니다. 이 세 군데를 내려야 하는데 저는 손뼉을 치고 ‘교조님 팔, 다리를 내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한여름이었는데 앉아있으려니 몸이 땀에 젖었습니다. 한쪽에는 너무 더워서 빨리 수훈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팔, 다리만 수훈을 전해도 말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팔에 수훈을 전하고 ‘악한 것 제거하고…’ 하고 있는데 ‘입에는 수훈을 안 내리노.’ 하는 교조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터전에서 듣던 음성이었습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이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하고 다시 손뼉을 치고 입에 수훈을 전했습니다. 거기가 기와집인데 남쪽으로 난 봉창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그렇게 수훈을 전하는데 그 봉창 문을 통해 레이저처럼 햇빛 한줄기가 그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교조님이 오셔서 말부터 할 수 있게 해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조님이 존명으로 활동하시는 것이 신의 역할을 하고 계신 겁니다. 물, 불, 바람이지 않습니까. 빛으로도 활동하시는 겁니다. 존명으로 활동하신다는 것이 바로 빨리 구제해 주시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교조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여기 아픈 사람이 있다면 ‘그래, 내가 비행기 예약을 해서 언제 갈게.’ 하셔도 시간이 걸립니다. 존명의 리로 활동하신다는 것은 손뼉을 치면 바로 오시는 겁니다. 자녀의 기원을 위해 바로 오신다는 것이 바로 은신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오셔서 말씀하시고 구제해 주시는 겁니다. 그렇게 팔과 다리에도 수훈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이틀 사흘 지나고 환자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말부터 할 수 있게 되니까. 신님, 교조님께서 도와주신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했습니다.
그런 후 교회에 왔는데 그 동네의 할머니가 “아이고 교회장님 동네에 경사가 났습니다.” 하는 겁니다. 그분이 기세가 세서 골목대장입니다. “골목대장이 회장님 수훈을 받은 다음에 말문이 터져서 정상이 되어 온 동네에 경사가 났습니다.”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조님께서 말부터 할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했습니다.
이 구제의 실천을 통해서 교조님과 만나고 제가 틀려도 교조님께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이게 우리의 교조님, 우리의 어버이입니다.
신앙하는 우리는 교조님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데까지 이르러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저에게 40년을 이어오는 데 힘이 되었습니다. 교조님이 계신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나와 하나가 되어, 어버이와 자녀가 하나가 되어 제가 틀리면 그 자리에서 바로 가르쳐주시고 ‘걱정하지 마라.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왜 걱정하느냐.’ 하십니다.
우리가 이런 신앙이 된다고 하면 한국에 확 구제가 일어날 수 있게 됩니다.
아까 진주님의 말씀 중에 점진적으로, 차츰차츰 이라는 것이 있어서 실제 우리 마음이 잘 안되고, 우리 인연이 있어서 말만으로는 되지 않는다고 보지만 최소한의 기본, 어버이와 나의 관계를 명확히 설정해야 합니다.
구극의 가르침
이 길을 구극의 가르침이라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완성시키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일러주시는 네 가지 뜻 중에서 첫째가 으뜸인 어버이를 알리러 오셨다. 둘째가 전 인류가 어버이의 자녀라고 자각하게 하려는 깨달음입니다. 우리는 이때까지 잊혔던 어버이, 몰랐던 어버이를 만나게 된 것 아닙니까.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누구라는 것을 우리는 신앙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내가 어버이신님, 교조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우쳐야 합니다. 천리교교조전에도 리가 통하는 자녀일 뿐 아니라 피가 흐르고 정이 통하는 어버이라는 것도 적어놓고 있습니다. 교조님과 어버이신님에게 우리는 피가 통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지금 확실히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어버이의 자녀라는 자각을 확실히 할 수 있다면 신님, 교조님도 기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아이고 고맙다. 되려 네가 나를 더 생각하고, 알아주면서 나에게 물어보면서 가고 있구나. 아무 걱정하지 마라. 내가 도와줄게.’ 하시지 않을까 합니다.
1년 2개월 남은 교조140년제까지 더 분발해서, 그때 터전에 돌아와서 교조님께 더 귀여운 자녀로서 기쁨을 드릴 수 있고 또 우리도 기쁨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고성교회도 이어져 내려가고 있고, 여러분 각 교회에서도 이어져 내려가고 있고, 그것이 끊이지 않도록 갈 때 우리의 발목을 잡는 악인연이라는 티끌이 차츰차츰 없어지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보람 있는 생활, 신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교회장을 물려주면서 이런 생각을 한번 더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이 자리를 서게 해주셔서 감사드리면서 부족하지만, 저의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4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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