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7호
입교188년(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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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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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맑히는 교화집

아침의 신앙 입문서

나카야마 요시즈미(中山慶純)

 

즐거운 삶에는 흐름이 있다

 

제가 수양과 주임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두 명의 수양과생이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만주(饅頭)2개 받았어, 하나 어때?”

한 사람이 그렇게 말하며, 만주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쪽은 쌀쌀맞게,

필요 없어.”

라는 단 한마디뿐. 그 자리는 금세 험악한 분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을 여러분께서도 목격한 적이 없으신가요?

즐거운 삶에는 흐름이 있습니다. 위의 경우, 처음 권한 사람으로부터 만주 하나 어때?”라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은 필요 없어.”라고 단 한마디로 거절해 버려, 즐거움과는 반대의 흐름으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가령 거절하더라도, “고마워. 하지만 오늘은 속이 좋지 않아서 괜찮아.”라고 하든지 만주는 정말 좋아하지만, 마음작정 중이라 지금은 단 음식을 먹지 못해.” , 이유를 한마디 보태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삶의 흐름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강은 많은 지류가 본류에 합류하여, 수량(水量)을 증가시켜 강폭을 넓혀가듯이 즐거운 삶의 흐름도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이어가면, 즐거운 분위기는 차츰 퍼져갑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어떤 대화를 하면 좋을지, 어떤 응대를 하면 좋을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부부나 부모와 자식 간, 가족과 같은 가까운 사이일수록 어리광을 부리게 됩니다. “어깨를 주물러 줄까?”라는 말을 들어도, “됐거든.”하고 쌀쌀맞게 대답하고 맙니다. 상대방의 호의를 제대로 감사도 하지 않고, 무뚝뚝한 응대만 하면 즐겁기는커녕 즐겁지 않은 가정이 되고 맙니다.

고속도로에서 자동차가 역주행했다는 뉴스가 종종 나옵니다. 인터체인지나 휴게소 출구에서 실수로 진행 방향을 착각하여, 그대로 본선에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속도를 올려 달리고 있는데, 정면에서 차가 오면, 생명과 직결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와 같은 잘못된 마음 씀씀이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평소 신중히 말을 돌려주어야겠습니다. “나는 즐거운 삶의 흐름을 살린 수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마음에 그렇게 물어보며, 나날을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여자아이가 한 ‘5초의 인사

 

천리교에서는 감사·겸허·서로 돕기의 세 가지를 즐거운 삶의 키워드로 내걸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널리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이므로, 세상 사람들도 이 길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며칠 전, ‘이 길과 세간과는 말에 담긴 의미가 다르구나!’하고 실감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덴리초등학교의 아이들 몇 명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 하고 있었습니다. 통근·통학 시간대였으므로, 교통량이 많아서 좀처럼 차가 멈춰주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겨우 한 대의 차가 멈춰서 아이들은 서둘러 도로를 건넜습니다.

도로를 건넌 아이들은 참배를 하기 위해 그대로 신전으로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때, 한 명의 여자아이가 멈추어 서서, 차도를 향해 멈춰준 차를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차를 발견하자, 5초 정도 머리를 깊이 숙였습니다.

횡단보도는 보행자 우선이므로, 차가 멈추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겠죠. 그중에는 좀 더 빨리 멈춰.’라고 말하듯이 차를 노려보며 건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여자아이는 대단하구나!’하고 마음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운전자는 여자아이가 인사한 것을 아마도 눈치채지 못했겠죠. 그러나 그런 것에는 개의치 않고, 계속 머리를 숙이고 있던 여자아이의 모습은 틀림없이 뒤를 달리던 운전자의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이 다음은 나도 멈추어 주어야겠다.’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여자아이가 한 5초의 인사에는 건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마음뿐만 아니라, ‘운전자의 하루가 행복하기를이라는 기원의 마음도 담겨 있다고 저는 느꼈습니다. 이런 사람이 늘어나면 틀림없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의 교통 사정은 변화하겠죠.

감사의 마음과 그것을 나타내는 행동은 세상의 모습을 바꾸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감사가 즐거운 삶의 키워드 중의 하나가 된 것이라고 저는 깊이 느꼈습니다.

여자아이는 불과 5초 정도 인사를 한 것뿐이며, 한마디의 교리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까지 심금을 울리는 것일까? 그것은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순직하게 실행했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을 순직하게 실행하는 모습은 어떤 훌륭한 이야기보다도 설득력이 있는 것입니다.

어버이신님, 교조님으로 강하게 이어진 감사, 겸허, 서로 돕기의 실행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줘서, 마음을 맑힐 수 있습니다. 그런 축적이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맑히고, 즐거운 삶의 세계 건설로 이어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하늘의 통장 계산법

 

며칠 전, 손자가 자기 용돈으로 저금통을 사 왔습니다. 기쁜 듯이 보여 주기에,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돈을 넣어줄게.”라며 동전을 넣으려는데, “필요 없어요!”라고 말하며, 재빨리 저금통을 끌어당겼습니다. 새것이므로 누구에게도 만지게 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기뻐하리라고 생각했던 만큼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문득 우리도 신님의 후의(厚意)를 저버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경우가 있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나날이 쓰는 우리들의 마음 씀씀이와 행동을 살펴보시고, 그 노력에 맞게 하늘의 통장에 행복이라는 저금을 적립해 주십니다. 직장 일이나 가사의 시간을 내서 교회본부나 교회의 월차제에 참배하고, 교회에 일참하여 히노끼싱에 힘쓰며, 고민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구제활동을 하는 등,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행복이 점점 쌓여갑니다.

그렇지만 도중에 불평불만을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짜증이 나게 하면, 어버이신님께서는 안타깝게 생각하시고 저금을 멈추시는 경우도 있겠죠. 경우에 따라서는 저금한 것을 모두 찾으시는 경우도 있을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자기가 열심히 한 일이나 사람들에게 해 준 것은 잘 기억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불평불만을 해서 티끌의 마음을 쓰거나 다른 사람에게 짜증이 나게 하는 것에는 의외로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곤란한 일이 생기면,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행복해지지 않는 걸까?’, ‘왜 나만 힘든 일을 당하는 걸까?’라고 한탄하고, 나아가서는 정말이지, 믿을 수 없어. 신앙을 그만두고 싶어.’라며 신님에게까지 불평불만을 하고 맙니다. 이래서는 행복은 필요 없습니다.”하고 스스로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이라는 저금에 대해서는 플러스를 늘릴 뿐만 아니라, 마이너스를 어떻게 줄일까 하는 시점(視點)도 중요합니다. 자기가 하기 나름이며,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된다는 것을 단단히 마음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어버이신님께서는, 인간이 즐거운 삶을 누리는 것을 보고 함께 즐기시려는 의도에서 인간과 세계를 창조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곤란하게 하거나 괴롭히려는 생각에서 보여 주시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따뜻한 어버이마음으로 항상 미리 앞서서 수호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음에 새겨지면, 어떤 일도 감사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터전은 인생의 환승역

 

어느 용재 가정의 남편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열심히 신앙하는 부인은 딸에게 아버지의 병을 어떻게든 구제받고 싶으니, 수양과에 들어가 주지 않겠니?”하고 부탁했습니다. 딸은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머니로부터 사실은 내가 가고 싶지만, 아버지의 간병을 해야 하니 갈 수 없구나. 네가 가 준다면 아버지는 틀림없이 구제받을 수 있을 거야.”라는 말에 설득되어 터전의 땅을 밟았습니다.

첫째 날의 개강식, 당시 주임이었던 제가 인사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터전에 돌아와서 수양과에 들어오는 정도로는 신상이나 사정을 구제받지 못합니다. 여기는 구제받는 방법을 배우는 곳이므로, 가르침을 단단히 배워서 몸에 익혀 주십시오.”

저는 격려하려는 생각에서 한 말이었지만, 그녀는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이야기가 다르잖아. 금방이라도 그만두고 돌아가야겠다.’

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담임 선생으로부터 반장으로 임명되어, 동료들을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씨가 수업에 나오고 싶지 않다고 하는군. 네가 이야기를 좀 들어 줄 수 없을까?”, “△△씨가 신상을 받았으므로, 수훈을 전해주었으면 좋겠어.”라는 식으로, 구제의 기회를 점점 부여받아 매일 바쁘게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의 심경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동료의 구제를 기원하며 근행을 올리고 히노끼싱에 힘쓰는 사이, 그녀의 마음은 점점 용솟음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터전에 돌아와서 수양과에 들어온 덕분에, 다른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기쁜 마음으로 바뀌었을 무렵, 아버지의 신상도 차츰 회복되어 갔습니다.

 

터전은 인생의 환승역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필사적으로 일해서 돈을 버는데 분주했다. 직장에서는 나름대로 입장을 부여받았다. ‘, 앞으로 조금만 더 버티면하고 의욕에 불타던 차에 큰 병에 걸렸다, 혹은 회사가 도산했다는 예는 많이 있습니다.

인생의 마디를 만났을 때, 자신이 타고 있는 전철이 잘못된 삶이나 사고방식을 목표로 해서 달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즐거운 삶을 향하는 전철로 환승해서 재출발하는 곳, 그곳이 터전입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와 이 길의 가르침을 잘 비교해 보고 바꾸어야 할 것은 바꾸어서 거기서부터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여성은 다른 사람의 구제를 기원하는 사람이 됨으로써 그녀 자신의 운명을 바꾸게 되고, 아버지의 신상도 조금씩 호전되는 수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터전에 돌아오시면,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온 방식을 되돌아보고 올바른 길을 재확인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그리고 터전은 인생의 환승역이라는 것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다음에는 그 사람들과 함께 터전귀참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