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57호
입교188년(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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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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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맑히는 교화집

아침의 신앙 입문서

나카야마 요시즈미

 

구제받을 힘이 있는 사람이란

 

어느 용재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옆방에 있는 아내에게 어이, 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어머, 나를 위해 차를 준비해 준 거야.’하고 착각. 서로 아무리 기다려도 차는 나오지 않습니다. 결국 남편이 차를 만들어 아내에게 가져갔습니다. “정말이지, 항상 이런 식이라니까…….”라고 말하는 남편.

또 어느 날, 손님이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남편이 마중을 나가자, 손님은 첫마디가 댁에는 부인이 몇 명이나 계십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현관에는 여성용 신발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 부인의 신발이었습니다. “신었던 신발을 그때그때 신발장에 넣었다면, 창피를 당하지 않았을 텐데. 교회에 가서 대체 뭘 배우고 있는 건지.”

부인은 매달 빠지지 않고 교회의 월차제에 참배하고 있으니까, 일단 신앙심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주위를 배려하지 못하는 것은, 조금 심한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가르침을 배우고자 하는 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르침은 스스로 배우지 않으면 몸에 배지 않습니다. 월차제에 참배할 때는 이달은 회장님께 어떤 강화를 들을 수 있을까?’, 강화를 듣고 난 후에는 나의 나쁜 버릇은 이것과 저것이구나. 다음 달의 월차제까지는 하나라도 없앨 수 있도록 노력하자.’라는 생각으로 참배를 계속하면, 월차제가 다가올 때마다 조금씩 성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배우고자 하는 힘이 붙으면, 마음에도 힘이 붙습니다. 그러면 무언가 싫은 일이 있어도, 금방 마음을 바꿀 수 있게 되고,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다른 사람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구제받는 힘으로도 이어집니다. 구제받는 힘이 있는 사람이란 무엇을 보더라도, 무엇을 듣더라도 밝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길을 걷고 있는데, 앞에서 걸어온 사람이 방긋 웃었다고 칩시다. 그때, ‘저 자식, 나를 보고 바보 취급했겠다.’ 하고 생각하는 것은, 받아들이는 방법이 좋지 않은 사람입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나를 보고 웃는다는 것은 어쩌면 전생에서 친구였을까?’ 이것은 정말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지요. 또한 남에게 싫은 말을 들어도 이 사람의 입을 통해 신님께서 나에게 주의를 주고 계시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귀를 훌륭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배운 것은 마음 깊이 새겨, 마음에 힘을 기릅시다. 만사는 자신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어떠한 일이라도, ‘기쁘구나, 감사하구나하고 기쁨이 가득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노력을 합시다.

 

신앙이 흔들릴 때

 

수양과에서는 3개월째에 감화대회가 개최됩니다. 3개월생의 각 반 대표 1명이 등단하여 지원한 경위, 수양 생활을 통해 느낀 점, 수료 후의 포부 등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여러 가지 신앙 체험을 들을 수 있는 그 시간이 항상 기대되었습니다.

어느 기()의 감화대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수양과생이 있습니다.

인연이 있어 같은 시기에 지원한 동료 중에서 도중에 그만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이 걱정됩니다.”

수양과생은 신상이나 사정을 수호받고 싶다, 가정의 운명을 바꾸고 싶다, 인생의 마디를 만나 어버이신님의 가르침을 다시 배우고 싶다 등, 여러 가지 생각을 가슴에 품고 3개월간의 수양에 힘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중에는 도중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신상이나 사정이 심각해져서 그만둘 수밖에 없는 사람뿐만 아니라, ‘기력을 잃어서 아무래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라는 정신적인 괴로움을 이유로 드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기력을 되찾는 방법은 없었던 것일까? 무엇보다 끝까지 같이 열심히 하자.’라고 말을 걸고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던 것일까?

감화에 나선 수양과생은 이런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것은 분명 나도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선생님들의 조언이나 동료들의 격려 덕분에 마지막까지 해낼 수 있었다.’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그만두어도 신상이나 사정이 나아진 후, 다시 지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곳은 이제 지긋지긋하다.’라며 싫어져서 그만둔 경우, 구제받는 시기는 훨씬 늦어지고, 그대로 신앙에서 멀어져 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걱정입니다.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각한 신상을 받았다거나, 혹은 고민거리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을 때 등, ‘신앙을 그만둘까…….’하고 나약해져서,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신앙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가르침을 마음의 기반으로 삼아 극복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격려하면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될 수 있는 한 도와줍니다. 그것이 용재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이 수양과생은 호소해 준 것으로 생각합니다.

긴 인생, 맑은 날이 있으면, 폭풍이 휘몰아치는 날도 있습니다. 큰 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거나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일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은 마음을 맑은 하늘로 하고, 벽을 뛰어넘어, 넘어져도 일어나는 방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흔들림이 없는 신앙심을 마음에 키워, 사람들의 구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하나라도 더 마음에 새기며, 걸어가도록 합시다.

 

덕은 이동하는가?

 

손자와 전차에 탔을 때의 일입니다. 전차가 만원이었으므로, 손잡이를 잡고 있었는데,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의 진동으로 비틀거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근처에 앉아 있던 여성이 저를 눈치채고, 얼른 자리를 양보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며 허리를 숙이자, 같이 앉은 손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비틀거리는 실력이 늘었네! 완전히 프로급이네!”

나는 나이가 들어 다리와 허리가 약해져서 자연히 비틀거리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주위에 사람도 있고, 집으로 돌아가서 타일러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는 말을 참았습니다.

 

그런데 자리를 서로 양보하는 것은 전차 안에서는 자주 있는 광경입니다. 그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과 양보받는 사람의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입니다. 편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고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고생을 한 사람 쪽으로 편한 사람의 덕이 조금 !’하고 흘러가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저는 손자에게 전차 안에서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그 누나가 자리를 양보해 준 덕분에 나도 너도 편하게 갈 수 있었지. 그 대신 아주 조금이지만, 우리들의 덕은 그 누나의 쪽으로 이동한 거야. 그 누나는 계속 서 있어서 피곤했겠지만, 우리를 도와준 만큼 덕을 받은 거란다. 잘됐지.”

덕을 받은 쪽은 그것으로 된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하고 싶은 것은 덕을 준 쪽입니다. 편해진 만큼, 덕이 준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내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다른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자신이 편해지는 길만 선택하고 있으면 덕은 점점 줄어들어서 언젠가는 바닥이 나고 맙니다. 그러면 어버이신님께서 빨리 덕을 쌓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재촉하십니다. 이것이 신상이나 사정이라고 하는 손길로도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받은 은혜는 반드시 어딘가에서 돌려드리고 덕을 보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나 물질에 불평불만을 하거나 남이 싫어하는 마음이 들게 해도 덕은 줄어 갑니다. 그것은 마치 덕을 넣는 주머니에 구멍이 뚫린 채로 걸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신앙하고 있더라도 덕은 점점 구멍으로 빠져나갑니다. 참고로 남이 싫어하는 말이 입에서 터져 나오게 되면, 그것은 덕이 없어졌다는 신호라고 생각해 주세요.

 

그러면 주머니의 구멍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이야기한 것과 반대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을 기뻐하며, 따뜻하고 상냥한 말로 사람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람, 서로 그런 신앙인을 목표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