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교 고성교회

"고성" 통권 366호
입교189년(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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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교회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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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계대제 신전강화

 

지금도 활동하고 계시는 교조님의 어버이마음

 

 

교회장

 

 

입교 189년 새해를 맞아서 춘계대제에 함께 참배하여 교조님께서 가르쳐주신 근행을 즐겁고 용솟음치게 올리게 되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춘계대제를 맞이해서 천리교의 춘계대제가 어떤 의미를 가진 날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춘계대제이자 교조님 140년제를 올리는 이날을 보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천리교에서 26일이라고 하는 날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월차제를 올리는 날, 그중에서도 1026일과 126일을 대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026일은 추계대제, 126일은 춘계대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시작한 리와 감춘 리는 하나이다라고 지도말씀에서 표현해 주셨는데, 1026일은 어버이신님이 교조님의 몸에 들어오셔서 월일의 현신으로 정해진 그날이며, 1887년 정월 26일 교조님이 은신하신 날. 그래서 날짜는 26일로써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정신은 자녀 귀여워하는 마음에서, 자녀를 구제하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 한 것은 똑같다는 말입니다. 자녀를 귀여워해서, 교조님을 통해서 자녀를 구제하기 위해서 처음 시작했고, 또 은신하신 것도 자녀가 귀엽기 때문에 은신하시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는 같다는 말입니다.

춘계대제는 교조님께서 몸을 감추시고 세계의 구제를 위해서 문을 여신 날을 기리는 대제입니다. 이날은 흔히 말하는 기일이나 추모의 날이 아니고 천리교에서는 교조님께서 지금은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시고, 살아서 세계를 구제하기 위해 활동하고 계신다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춘계대제는 교조님께서 지금도 세계 구제를 위해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날이자 근행으로서 교조님의 어버이마음에 보답해 가려는 결의를 새롭게 하는 대제입니다. 교조님께서는 은신하실 당시에 문을 열고 세계로 나아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조님은 세계 구제를 위해서는 근행을 올려야 된다. 라고 하시며 근행을 서두르셨지만, 교조님이 생존해 계신 채로 그대로 근행을 보면 교조님이 옥고를 치르시게 되고 그런 두려움 때문에 근행을 자유롭게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교조님이 보실 때는 교조님이 현신으로 계시는 것보다 세계의 구제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근행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조님이 현신을 숨기시게 된 직접적인 계기에는 근행이 있습니다. 교조님이 계시면 사람들이 두려워서 근행을 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하지만 세계를 구제하기 위해서는 근행을 꼭 올려야 하므로 교조님은 육체를 떠나서라도 근행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춘계대제는 근행으로서 세계 구제를 하는 길을 다시 다짐하는 날입니다. 교조님이 계실 때는 모든 신앙이 교조님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교조님이 계시지 않게 되고 나서는 신앙의 중심은 근행을 통해서 해나가는 것으로 바뀌어진 전환의 길이 바로 정월 26일 춘계대제인 것입니다.

교조님께서는 은신하신 직후에 모두 다 교조님 은신하시고 나시면 이제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으므로, 신앙의 중심이 없어졌기 때문에 천리교는 이제 다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교조님은 본석 선생님을 통해서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날을 두고 보라.라고 했습니다. 교조님이 없어졌다고 해서 이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증거로서 이때까지 50년 동안 모본의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지금까지의 길과, 지금은 교조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이제는 아무것도 의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앞으로는 절망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금과 또 앞으로 장차 나타나는 일을 보면서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신이 없어도 세계로 퍼져나간 이 길의 모습을 통해서 정말 일본의 작은 마을, 나라현 쇼야시키라는 마을에서 시작된 이 가르침이 지금은 세계 곳곳으로 전해지고 있는 모습이 말하자면, 앞으로의 길을 두고 보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것이 춘계대제에 담겨져 있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는 126일은 본래 대제로서 의미를 가진 날이라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버이신님께서 26일의 리로서 근행을, 그날은 월차제 근행을 올려야 된다고 해서 올리게 된 것이 월차제이고 그 중에 1026일과 126일은 대제입니다.

교조님 연제를 올리게 된 것은 자녀들이 원해서 올리게 된 것입니다. 교조님이 모습은 안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인간적으로 교조님을 추모하고 그리기 위해서 연제를 올리게 해주십시오. 라고 부탁을 드려서 허락을 받아서 올리게 된 것이 연제입니다. 그래서 대제 위에 연제라는 인간이 원해서 우리가 인간의 정성으로 마음을 모아서 올리게 된 것이 연제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대제입니다. 그 위에 연제로서, 우리가 정성으로서 위에 올려놓은 것이 연제입니다.

지도말씀에도 26일은 해마다 변하지 않는 대제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춘계대제는 어버이 쪽에서 가르쳐주신 이치고 교조님 연제는 자녀 쪽에서 올리는 정성이다. 그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교조님께서 가르쳐주신 근행, 그중에서도 우리가 매일같이 올리고 있는 좌근 가사에 보면 그렇게 나와 있죠.

악한 것을 제거하고 도와주소서 천리왕님이시여.

악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 고생, 고통,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사정, 마디들 이런 것을 제거하고 도와주소서 천리왕님이시여 라고 인간 쪽에서 신님에게 기원을 하고 부탁을 드립니다. 그 답으로서 잠깐 이야기와 팔수에서 나오죠. 신님이 이제 말씀해 주세요.

잠깐 이야기 천신의 말을 들어다오 그릇된 말은 아닐것이니 이세상 땅과 하늘의 본을 받아서 부부를 점지하여 왔었으므로 이것이 이세상의 시초이니라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나 괴로움 이런 것을 벗어나기 위해서 신에게 간청을 하고 기원을 하지만 신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세상은 땅과 하늘의 본을 받아서 이루어져 있다. 땅과 하늘이라는 둘 하나가 합쳐져서 하나로 되어져 있는 세상이다. 즉 사람의 어떤 고생이나 어려움, 괴로움, 고통도 그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즐거움과 낙이라는 것이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어떤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반드시 안 좋은 것만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런 어려움이나 고생이나 괴로움이 있음으로써 또 즐거운 낙도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사람도 이렇게 편식만 하게 되면 병에 걸리게 되고 고생을 하게 되죠. 누구나 다 고생을 싫어하고 괴로운 것은 피해 가고 싶고 즐겁고 좋은 것만 하고 싶단 말입니다. 그 마음이 말하자면 어버이신님이 이 세상을 만들고 움직여가는 원리에 어긋나는 마음이다.

뭐든지 편하고 좋은 것만 쫓아가고 싶어합니다. 그래서는 결국 고생, 괴로움도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고생이나 괴로움을 두려워하거나 피해 가는 존재가 아니고 그런 것들을 지나가면서 즐거움을 찾아야 됩니다. 그리고 팔수에서는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도우려고 우리가 마음을 내고, 마음을 용솟음치면 신도, 인간도 다 용솟음치는 세상이야.

우리가 왜 이런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겪게 되고 이렇게 하게 됐느냐 이렇게 생각하지만 결국 낙과 고통이라는 것 두 가지가 한 세트로 이루어진 세계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너무 즐거운 것만 쫓아다니게 되면 그 반대로 고통도 따라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왕에 고생하는 바에는 남을 도와주는 고생을 스스로 자처해서 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이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교조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다니고 맛집을 다니고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을 사고 이런 게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죠. 단지 그런 즐거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정말 즐거운 것은 이런 어려운 것이 닥쳐왔을 때도 마음이 어둡지 않고 괴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정말 큰 즐거움입니다. 역시 사람은 그런 과정을 한번 겪어 보게 되면 정말 큰 즐거움이라는 것, 낙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근행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춘계대제를 올렸습니다만 이 춘계대제에 담겨져 있는 의미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리교를 신앙을 우리는 교조님께서 지금도 활동하고 계신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근행을 세계 구제의 중심으로 두고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단지 눈에 보이는 형식이 아니라 교조님이 걸어가 주신 모본의 마음을 따라서 걸으려는 마음으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이것이 춘계대제를 맞이해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런 마음들이 교조님 모본에 어떻게 통하고 있는가?

작년 한 해에도 우리는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재해 재난 마디를 겪었습니다. 작년을 돌이켜 보면, 작년 여름에는 집중호우와 대규모 홍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 봄철 경우에는 대규모 산불이 우리나라에도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집중호우, 홍수, 그리고 산불로서 다 고생을 했습니다. 또 계속되고 있는 전쟁들,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그런 전쟁과 참상들 또 항공기가 추락한다든지, 여러 가지 사건들도 돌이켜 보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들 개인에게 닥친 신상이나 사정들과 같은 마디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보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가?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왜 일어났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아무리 따져봐도 그걸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이 일어났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문제가 사실은 중요한 문제지 그걸 자꾸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파고들어도 해결이 되지가 않죠. 하지만 이 길에서는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마디에서 싹이 튼다. 어떤 재해나 사고가 일어나고 질병이 우리한테 닥치고 또 힘든 사정이 우리한테 닥쳐와도 이것은 어버이신님이 괴롭히기 위해서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괴롭고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으로 보여주신 마디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피해 가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지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길에서는 보는 것도 인연, 듣는 것도 인연이란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불평을 하면서 물었습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깁니까? 그때 들은 대답이 있습니다. 어버이신님이 당신이니까 그 일을 맡긴 것이다. 당신이니까 그 사람을 맡긴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고통을 받는 사람을 보게 되는 것도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도 그 자체가 어버이신님의 기대라는 것이다. 이 길에서는 모든 그런 사정이나 마디를 보고 받아들이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세상 보통 사람처럼 재수가 없어서 그랬다. 노력해도 쓸데없다.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 그 자체가 어버이신님의 기대라서 당신한테 그런 걸 보여주고 맡겨주신 것이다. 그냥 단순히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불쌍하다는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정을 돕는 일, 그 사람을 돕는 역할을 내가 맡아 달라는 뜻으로 우리한테 보여주신 것이다.”

이런 자연재해나 재난이 일어났을 때, 몇 년 전에도 일본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 지진이 일어나게 되면 일단 도로에 차가 달릴 수도 없고 길이 갈라지고 고가도로가 있으면 전부 다 무너지고 그게 다 무너지면 잔해가 깔려서 차가 지나다닐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천리에서 1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고베에 지진이 났을 때도 길이 다 무너지고 갈라져, 거기 들어가는 데 며칠 걸린 거예요. 왜냐하면, 걸어서 가든지 자전거로 가든 오토바이로 조금씩 가고 그랬어요. 실제로 우리가 지금 가봤자 길이 막혀서 가지는 못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막혀있는 줄 알면서도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구호물자를 싣고 사람들이 다 지고 날라서 들어갔습니다. 그런 것이 우리가 마음의 방향이 현대에서 우리의 모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흔히 교조님 말씀을 따라야 된다. 교조님이 보여주신 모본을 본받아서 살아야 된다. 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교조님은 50년 동안 어떤 마디가 닥쳐와도 사람을 구제하고자 하는 마음을 결코 놓지 않았습니다. 교조님은 상황이 아무리 안 좋아지더라도 사람을 도와야 된다. 라는 그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떤 고난이나 마디 속에서도 그걸 헤쳐 나가서 극복해서 이 길이 뻗어나가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가난도, 박해도, 감옥도 모두 피하지 않고 지나신 그 마음의 방향, 그 마음이 바로 모본입니다.

본석 선생님, 이부리 이조 선생님의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업적이나 이런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몸을 낮추고 걸어가신 이바지의 삶, 음덕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음덕으로 아무도 모르게 남을 도운 것이 음덕의 길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셨습니다. 그 자체가 모본이다. 라고 교조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삼년천일을 교조님과 같은 마음으로 걸으면 50년을 걸은 것으로 받아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삼년천일이라는 것은 뭔가를 새로 만들고 짓고 그런 기간이 아닙니다. 단지 병든 사람에게 수훈을 전해주는 것, 괴로워하는 사람 옆에 같이 있어 주는 것 또 내가 보고 겪는 것 듣는 것, 이런 세상의 고통을 내 일처럼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기원하는 것. 이것을 3년 동안 진심으로 해 달라는 그런 부탁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우리들은 교조님의 도구들이자 가르침을 전해가는 용재입니다. 말하자면, 교조님의 대리인이자 전갈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조님의 전갈인이라고 하는 것은 교조님의 마음, 즉 어버이마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또 근행과 수훈으로서 남을 도와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터전 한줄기의 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왜 터전 한줄기로 이어지는 신앙이 되어야 하는가 하면요.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내가 내가 하기 쉽습니다. 내가 능력이 뛰어나고 내가 더 아는 것이 많고 내가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면 자칫 자신의 리를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우리가 결코 겸허하고 이어갈 수 있는 신앙이 되지 않습니다.

지도말씀에 이 세상이 다 어두워져서 손짓도 모르게 될 정도로 어두워지게 되더라도 뿌리가 사방으로 뻗어 있더라도 사방으로 팔방으로 뻗어 있는데, 일곱 군데가 끊어져도 한 군데만 이어져 있으면 살아남는다.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단단히 뿌리를 터전으로 이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터전으로 이어진다 하는 것은 교조님이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터전으로 이어지는 신앙을 해야 합니다.

지금도 보면요, 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람이 커지고 번창해지고, 또 자만했을 때 제일 큰 위기가 오게 됩니다. 천리의 교회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형태적으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이나 물질에 그다지 곤궁하지 않으면 내가 훌륭한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다 그렇게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터전으로 마음을 이어야 합니다. 교조님 정신 아래에서 우리는 다 엎드려서 이바지하는 그 마음이 되어야 된단 말입니다. 안 그러면 사람이 성공하고 번창하면 내가 뛰어나서 그렇게 된 모양이다라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우리가 터전에 자주 갈 수 있는가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터전을 생각하는가? 터전이라고 하는 것은 교조님의 마음을 얼마나 진심으로 생각하고 또 그걸 전해갈 마음이 되어 있는지입니다. 교조님 140년제는 무엇을 완성하는 날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닥쳐오는 재해도, 사고도, 전쟁도 신상이나 사정도 모두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로 받아달라는 어버이신님으로부터의 메시지입니다. 교조님 연제를 맞이해서 지난 3년 동안 누구나 다 노력하면서 걸어왔지만, 앞으로도 우리는 교조님의 마음으로써 걸어갈 수 있는, 모본의 마음으로 걸어갈 수 있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반드시 그런 길을 걸어가게 될 때 교조님 마음으로 걸어가고 모본의 마음으로 걸어갈 때는 우리에게도 보여지는 세계의 수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작년 교회본부 추계대제에서 진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교조님께서는 입교 이래 여러 가지 모본을 남겨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성인이 더디었던 자녀들은 마침내 교조님의 정명을 25년이나 앞당기는 크나큰 재촉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연제를 모시게 된 근본입니다.

교조님의 연제는 자녀를 한없이 사랑하시는 마음에서 보여주신 전환의 마디입니다. 이 연제를 모시게 된 우리는 예로부터 그래왔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 시순을 통해 우리를 다시 일깨워주시고 길러주신 어버이마음에 보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연제를 모시는 참된 의미라 할 것입니다. 이 길의 자녀들이 모두 모본을 목표로 삼아 가르쳐 주신 바를 하나하나 실천하며 한마음 한뜻이 되어 마음의 성인을 향한 걸음을 내딛고 교조님께서 안심하시고 기뻐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추진해 온 연제 활동도 이제 남은 기간은 석 달이 되었습니다. 삼년천일의 목표 달성을 함께 지금 이 순간에도 모두가 온갖 힘을 다해 정성을 다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정성을 들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소원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또한 지금 이때 힘을 다해 움직인 모든 것은 앞으로의 걸음을 위한 씨앗 뿌리기입니다. 결코 헛되는 일은 없습니다. 작년 이 자리에서도 같은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힘껏 수고했다는 충만함과 기쁨을 안고 연제를 맞이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용기를 내어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