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성" 통권 368호 입교189년(2026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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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5 12:59
2월 월차제 신전강화
연제에 받은 수호
최영철(문산교회장)
여러분 반갑습니다. 명절이 엊그제입니다만 즐거운 명절이 되셨는지요? 잘 지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명절날 상급으로부터 큰 선물을 받고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갑작스럽게 큰 선물을 주셔서, 여러분들한테는 돌려주긴 돌려줘야 하는데 그 무게가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적더라도 이해하시고 끝까지 잘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4박)
감사합니다. 2월 월차제의 12장 근행을 즐겁게 마치고 이제는 양력도 음력도 다 설을 지났습니다. 이제부터 또 한 해 첫 출발을 시작합니다. 3년 동안 연제 활동을 마치고 지난 1월 23일 터전에 들어가서 연제 근행을 올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해서 연제의 기쁨을 맛봤으리라고 믿습니다.
저 역시 3년 동안에 내 신앙의 전체를 놓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연제를 다섯 번 보면서 뭔가 차분히 정리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에 많이 잠겼습니다. 늘 활동을 한다고 하지만 지나고 보면 뭔가 부족하고 그렇습니다.
3년 동안에 여러 가지 마음 작정을 하면서 어버이신님께 기원드린 것도 있었고, 그 중 한 가지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진주님께서는 연제 활동이 끝났지만,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어서 성인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뎌나가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연제가 끝났지만 이제 반환점을 돌고 먼 목적지를 향해서 다시 또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는 연제의 해니까 1년 동안 충전해서 힘차게 다 함께 걸어갔으면 합니다.
저는 연제를 맞이해서 신기하게 문산교회 사정이 하나 해결되는 수호를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초대 회장님 계실 때부터 사람들을 집에서 수양을 시켰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반신을 못 쓰는 분도 모셨고 제가 교회장이 되어서도 나이 많은 분들을 한두 분씩 모셔 왔습니다. 오늘날까지 오면서 수없이 많은 분들을 모셨습니다만 지금 한 분은 20년 동안 모셔 왔었습니다.
그분이 성격이 강하다 할까 그랬습니다. 그동안에는 몰랐습니다. 같이 밥 먹고 혼자 화장실 다니고 하니까 그냥 가족처럼 이렇게 지내 왔습니다만 점점 연세가 많아지고 하니까 몸이 아픈 데도 많아지고 그래서 지금은 순환기 호흡기를 달고 계십니다. 이 분은 수급자이기 때문에 아무 데나 가면 안 됩니다. 지정병원이 있어요. 지정병원 외에는 진찰을 할 수가 없습니다. 문산에도 지정병원이 있고 아무 병원에 가서는 안됩니다. 대학병원 중에도 지정병원이 있습니다. 갑자기 폐렴이 와서 지정 대학병원에 순환기 진찰을 받고 입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1주일 만에 퇴원을 하고 의뢰서를 써줘서 요양병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보냈는데 한 2주 정도 되니까 집에 온다고 난리가 났어요. 간호사님들이 못 견디니까 간호사님들이 제발 좀 데리고 가라고 해서 또 모셔 오게 되었습니다. 집에 오니까 증상이 더 심해졌습니다. 치매까지 오는 거예요. 그리고 화장실도 혼자서 못 가게 되고 등급을 받아 요양보호사를 신청했지만, 요양보호사도 힘들다고 가버리고 나니 누가 합니까? 결국 사모밖에 없는데 그래서 많이 걱정을 했습니다. 사모도 여러 사람을 모셨지만, 이제는 자기도 나이가 드니까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어버이신님께서 정리를 안 해주시겠나! 하고 기대를 했습니다.
저는 교회장 되기 전부터 꿈이 복지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모시는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을 모셨고, 많은 분들을 모실 적에도 다양한 분들이 계셨어요. 때로는 밤잠을 못 자게 효자봉으로 문을 두드려 잠을 설치고 쫓아가야 하는 이런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래도 교회에 보탬이 좀 되고, 그때는 젊었으니까 힘든 줄 몰랐었죠.
그랬기 때문에 많아도 그런 것에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모실 수가 있었는데, 갈수록 집사람도 힘이 부치고, 또 대소변까지 받아내고 하니까 힘이 들었는데 점점 치매가 심해지고 요양보호사님이 오면 밥을 갖다줘도 안 먹는다고 합니다. 좀 있다 요양보호사가 먹으라고 하면 늦게 줬다고 또 뭐라 합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큰일 나겠다.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요양원에 모셔야 안 되겠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제 가족이 없어요. 아들, 딸이 있는데, 본인의 자식이 아닙니다. 작은 부인의 자식입니다. 그리고 수급자로 만들기 위해 남편과도 이혼을 했습니다. 제가 수급자로 만들기 위해 이혼을 시켜주었는데, 그래도 교회에 의탁을 한 거예요.
이분이 젊었을 적에는 식모를 살다가 왔는데 힘들게 돈을 모아서는 의료기 파는 데서 살다시피하며 집에도 의료기를 사와서 하곤 했습니다. 배에다가 코에다가 불로 찌지고 이렇게 생활을 하다보니까 몸이 다 망가진 것 같아요. 본인은 모르죠. 우리가 볼 적에는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닌데 그런 생활을 해왔어요.
나이 드시니까 차츰차츰 몸이 더 안 좋아졌습니다. 운동을 좀 하라 하면 운동도 안 하려고 하고, 나한테 화를 내니까 이제는 그런 말도 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심해진 거예요.
이번에 터전 가기 전에 안 되겠다 싶어서 요양보호사님, 센터장님과 이분의 아들하고 의논해서 요양원에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분을 그 당시 3천만 원을 받고 20년을 모셨는데 자기는 죽을 때까지 여기서 다 책임을 져야 된다고 하니까 그동안은 내보내기도 힘들고 함께 힘들어도 살아왔습니다. 그렇다고 달달이 밥값을 내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교회니까 힘들어도 같이 왔는데 도저히 이제는 모실 상황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런데 동네 병원에 가면 이런 호흡기를 꽂고 이렇게 집에서 모시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의사가 나무랍니다. 그래도 본인은 병원에 안 있으려고 하니까 어쩔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랬는데 이번에 얘기를 해서 보내기로 했습니다.
요양원에 보내려니까, 서류가 많이 필요했습니다. 센터장님이 이런 이런 서류를 만들라고 해서 그런 서류를 구비해서 요양원에서 보냈더니 요양원에서 상태가 어떻냐고 합니다. 호흡기를 꽂고 있다고 하니까 안 된다는 거예요. 어떻든 터전귀참을 하기 전까지 보내려고 생각했는데, 본인은 갈 생각을 안 했으니까 모르죠.
아들이 친아들은 아니지만, 어렵게 모아 놓은 돈을 아들에게 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갈 때마다 아들에게 의지를 하고, 우리도 같이 대동을 시키며 보호자로서 역할을 좀 해달라고 했더니 1년에 한두번 올까 말까 할 정도로 귀찮아 하는 거예요. 화장실만 다녀도 같이 가족처럼 하면 되는데, 이제는 그리 안되지 않느냐 이제는 요양원에 보내야하겠다며 아들을 설득시키려 하는데, 내 부모도 아닌데 나하고는 관계가 없다고 하면서 자꾸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겁니다.
요양원은 안 되니까 요양병원으로 보내는 게 낫겠다. 병원이고 하니까 괜찮지 않겠느냐. 그러려니까 또 서류가 복잡한 거예요. 갑작스럽게 내가 터전을 가야 되는데 안 되겠다 싶어서, 좀 앞당기자 해서 보호센터장님한테 상담을 하는데, 상태가 더 악화되어 센터장님과 상담을 다시 했습니다. 본인이 알면 절대 안 가려고 하니까. 병원에 진료 보러 간다고 속이자고... 아들도 오라 해서 그렇게 말을 맞췄습니다.
그렇게 병원차가 와서 22일 모셔 가고 해결이 잘 되어서 저는 터전을 갔습니다. 집사람이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밥도 안 먹지요... 내 혼자서 어떻게 처리를 하냐? 걱정했는데 참 신님께서 깨끗이 정리를 해줬습니다. 우리가 정리를 하려고 하니 너무 힘드는 거예요. 인정상 마음도 아프지만 본인이 억지를 부리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랬는데 참으로 많은 수호를 받았습니다. 이 문제는 어버이신님께서 수호를 안 해주시면 갈 사람이 아닌데 그래도 병원에 가자 하니까 순순히 잘 따라갔습니다.
22일 갔으니까 한 달이 다 돼 갑니다만, 아들이 우리 이제 인연을 끊자. 이제는 갔으니까 알아서 하라고 하고, 우리도 자기가 죽으면 장례비라고 집사람 앞으로 들어놓은 적금도 다 돌려주고 모든 것을 정리했습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성격이 유별나서 병원 생활에 적응을 잘하도록 빌어드리는 것뿐입니다.
아들이 정리를 한다고 했는데, 확실하게 잘 마무리가 되었는지, 뒤에 또 온다고 난리를 할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제는 신님의 수호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오면서 여러 가지 굽이굽이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만, 신님이 수호하시는 일, 이루시는 일이고, 신님밖에 확실히 해결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사람과 지금까지 오면서 둘이서 단란하게 밥 먹어본 적이 열 손가락 안에 듭니다. 한 번도 같이 앉아서 먹어본 적이 없거든요. 지금도 남자 셋이서 앉아서 먹습니다만 부엌이 하나고 우리는 식당 옆에 있는데, 밥을 먹는다고 하면 앉아서 서서 조금 먹거나, 아니면 안먹고 먹었다 하는 때가 많습니다. 저는 마음이 아프죠. 젊었을 때는 멋모르고 왔지만,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신님이 느지막이나마 일찍 이렇게 해결을 해주니까 참 감사합니다.
이것이 연제의 수호가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언뜻 흘리기로는 교회장을 물러나야 하겠다라고 흘린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올해입니다. 내가 마음에 3년 동안 신님한테 고한 것이 어떻든 순조롭게 3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신님께서 수호를 해 달라, 연제의 수호를 받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래서 은연중에 빨리 회사를 관두라 얘기를 해왔고 아들도 어느 정도는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교회장을 받을 때만 해도 참 겁이 없었습니다. 교회가 역사를 하고 빚이 그렇게 많이 있는데도 교회장 해야 한다고 하니까 얼떨결에 받았습니다만, 요즘에는 그렇지를 않은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이 머리가 잘 돌아가거든요. 저도 가만히 생각하니까. 물려주는데 무조건 넘긴다는 게 이게 그냥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가족이 입주를 해야 하고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아들 부부가 갑작스럽게 회사를 관두면, 교회가 옛날처럼 번성해 있는 것도 아니고 운영하기도 힘든 이런 상황에서 덥석 넘겨준다고 하는 게 내가 생각해도 안 받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나 자기들끼리 걱정을 하겠습니까? 손녀딸이 하는 얘기가 “할아버지, 아빠가 교회장 일을 물려받아야 해? 그다음에는 나야?” 이런 얘기를 하니까 뜨끔한 거예요. 그 애가 뭘 알고 그랬겠습니까? 다음에는 내가 받아야 해 이러니까 자기들끼리는 뭐 말이 왔다 갔다 하니까 그런 얘기를 은연중에 들었겠죠.
그래서 걱정하지 말라 했는데 이번 설에 와서 며느리한테 이제 대충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겉은 멀쩡하지만, 몸이 정상이 아니고 제 역할도 못 하고 여러 가지 제약을 많이 받으니까, 이제는 물려주려 한다. 결혼할 적에 10년 동안 사회생활을 하고 들어오라고 약속을 했습니다. 작년이 10년이니까. 올해는 꼭 받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아들 부부도 은연 중에 마음 작정이 돼 있었어요. 그런데 며느리는 생판 맹탕 아닙니까? 신앙하는 며느리도 아니고 참 거부감이 많을 줄 알았는데 이번에 와서 하는 얘기가 “아버님! 둘이서 같이 손을 놓으면 어떡합니까? 제가 직장을 12월 달에 다른 데 옮기기 위해서 관뒀는데 둘이서 같이 손을 놔버리면은 어떡하겠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우선 직장에 다닐 수 있게끔 하고 하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안 한다는 소리를 안 해요. 그래서 기특했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하니까 직장을 놓으려면 지금부터 놓아야 교육을 받고 교회장 검정을 받고 절차를 하면 가을쯤 하려고 이렇게 마음을 먹었는데 그게 안 될 것 같아요. 하지만 내년에는 충분히 되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안에 내가 조금이나마 교회 손도 보고 준비 과정을 거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며느리도 순순히 그냥 아버지 올해만 참으라고 하니까 참아야 되겠죠. 그게 딱 거절을 거절했으면 좀 기분이 나빴을 건데 며느리가 자기가 그리 사정을 하니까 그래도 마음에는 담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서 참 고맙더라고요. 교회라고는 천리교의 천자도 모르고 시집왔는데 그래도 근행 잘 보죠. 뭐 착실히 하고 있어요. 그래도 아버지 안 한다고 이런 얘기를 안 하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요즘 부부간에 그런 관계로서 틀어지고 비비고 하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래서 참 감사한 수호다.
제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지만, 거짓말쟁이가 될 것 같아서 전해드립니다. 소문이 그리 나던데 안 넘어겨주나 하면 또 여러 가지 불편할 것 같아서 제가 알려드리는 겁니다.
말은 미리 하는 것이 아니라고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마음속으로 3년 동안 기원해 왔어요. 꼭 넘겨야 하겠다. 내가 정말로 내 역할을 못 하는데 내가 이렇게 있어 가지고 되겠나. 그래도 아들 나이가 45 넘어가 버리는데 이것도 안 된다. 이래 가지고 마음의 준비를 해 왔는데 딱 자기가 손을 먼저 놨다고 얘기를 하니까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차츰차츰 신님이 수호를 해주시지 않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여러분들도 연제 동안에 3년 동안 오면서 많은 노력을 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진주님께서도 연제가 끝난 것이 아니고 지금부터 성인의 길로 또 한 발짝 한 발짝 힘차게 나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만 여러분들이 노력한 것은 적금 들어놨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수호가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노력한 것만큼은 이자가 불어서 분명히 신님께서 수호를 해주시라 저는 확신을 합니다.
그래서 실망하시지 마시고 우리가 힘차게 또 이 연제의 해에 충전을 시켜서 150년제를 향해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족하나마 여러분들에게 큰 선물이 돼야 하는데 원고도 없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올라와서 죄송합니다만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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