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권 357호 입교188년(2025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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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9 15:14
전도
김연수(도성포교소)
오늘은 전도 다녔던 일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어느 자리에선가 몇 번 얘기했던 내용이 반복될 수도 있지만, 미리 양해를 구하고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진주로 이사 와서 처음에는 거의 전도를 다니지 않았습니다. 빵집 살림방에 간단하게 옥수만 올리고 근행을 올리다, 몇 년 지나 우연히 신님을 반납하는 댁에서 신전대를 얻게 되어 신전대를 놓고 신님을 모시고 조금은 그럴듯하게 근행을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처음 빵집을 하면서 팔다 남은 빵을 어디 줄 데가 없을까 찾다가 ‘푸드뱅크’를 알게 됐습니다. ‘푸드뱅크’는 정부 주관의 먹거리 나눔 사업인데 그때 처음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진주에서는 ‘푸드뱅크’를 천주교 재단의 노인요양원에서 운영을 위탁받아 하고 있었습니다. 그 푸드뱅크를 알게 되어 거기에 연락이 닿아서 남은 빵을 주곤 했는데, 푸드뱅크 차량을 운행하시는 분이 그 노인요양원에서 일하는 복지사 한 분을 소개해 줬습니다.
그 복지사는 저랑 동갑이었고 친구로 말을 트고 지내게 됐습니다. 그때, 저도 어디 봉사할 데가 없을까 찾던 중이었는데, 진주시에 속했지만,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 마을에서 아동센터를 운영하는 교회(개신교)를 소개받았습니다.
지금은 아동센터가 지역복지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지만, 그때는 아동센터가 처음 시작되던 시기여서 센터가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정부 지원도 거의 없다시피 했던 때였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과 사모님도 거의 봉사로 센터를 운영하고 계셨습니다.
거기에서 아이들 영어 공부를 3~4년 정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제가 공부를 더 많이 하기는 했지만요.
그렇게 나름 봉사를 한다고 하다가 가지 못할 사정이 생겼습니다.
전에 신앙적으로 고민이 있을 때마다 연락해서 도움을 받곤 하던 포교소장님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그 소장님에게 전화해서 “봉사를 다니던 센터에서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더 이상 다니기 곤란한 상황이 됐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어봤더니, 바로 나온 대답이 봉사를 다니던 날짜에 맞춰서 시내 전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동센터 봉사는 월, 화, 목요일을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조언을 해주면서 어디 공터에 가서 좌근 손춤을 추라는 겁니다. 그분은 노방전도를 하면 시장 같은 데 가서 12장 손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제가 약간의 오기가 생겼습니다. ‘어차피 손춤 전도를 할 거면 사람들 있는 데서 하지, 굳이 숨어서 할 거 뭐 있겠나?’ 하고요. 아마 당시 공터에 가서 손춤을 추라고 한 속뜻은 그렇게 연습해서 사람들 많이 있는 곳에 가서 하라는 의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의 본격적인(?) 전도가 시작됐습니다. 지금부터 거의 십일, 이 년 전의 일이네요.
그때는 신악가 12장을 온전히 외우지를 못했습니다. 신악가를 다 외지 못하는데 길거리에 신악가대를 세워놓고 하기도 곤란하니 신악가 12장을 다 외우는 게 먼저였습니다.
신악가 12장을 조그맣게 종이에 프린트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시외버스터미널까지는 걸어서 30분 정도 걸립니다. ‘천리교’ 띠를 매고 걸으면서 시외버스터미널 가는 길에 일주일에 한 장씩 외우기로 했습니다. 첫 주에는 터미널에서 좌근을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주에는 1장을 다 외워서 좌근부터 1장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에는 좌근부터 2장까지 하는 식으로 3개월 동안 신악가를 외워서 12장 손춤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터미널 손춤 전도를 거의 3년 정도 한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는 전도 형태를 여러 가지로 바꿔서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 그렇게 전도를 할 때는 창피하기도 하고 용기도 잘 안 나고 했습니다. 시작할 때 동쪽을 보고 ‘교조님 지켜주세요.’ 하고 마음속으로 기원하고 손춤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졸이는 마음으로 전도를 시작하면 저 멀리 하늘의 구름 뒤편에서 교조님이 지켜보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물론, 기분 탓이었겠지만요. ㅎㅎ
항상 우리는 모든 면에서 너무나 많은 수호를 받고 있지만, 전도를 하면서 나름의 수호를 보너스로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수호는 주변에 감사할 일이 조금씩 더 늘어나고, 신님의 수호를 조금 더 확실히 믿을 수 있게 된 게 가장 큰 수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마다 전도를 나가려고 노력은 하지만, 처음 전도를 시작했던 때만큼의 열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열정은 없지만 끊이지 않고 변함없이 전도의 길을 걸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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