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통권 357호 입교188년(2025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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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5 08:27
추억어린 사랑을 베이다
최진만
칠 년생 쯤 되는 석류나무를 김 선생으로부터 분양 받은 지 이십여 년. 우신아파트 화단모퉁이에 정성껏 심고 관찰했던 재미가 엊그제 같다. 이맘때면 하루가 다르게 연두 빛 잎을 단 가지는 넓은 머리 공간을 독차지할 기세였다. 이른 봄엔 뿌리 곁으로 빙 둘러 흙을 파고 말린 계분과 퇴비를 듬뿍 넣고 다시 흙을 덮는 날에는 오늘처럼 꼭 비가 와주었다. 날이 개면 해살 속으로 실록의 잎은 비취색 에메랄드보석처럼 빛났다.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지지대 부목을 대고 가지가 부러지지 않게 붙들어 매기도 하였다. 흐드러지게 석류꽃이 피고 푸른 석류가 조금씩 자라는 모양을 지켜보면서 행복한 미소를 느낄 수 있었다. 해마다 가을이면 석류 알이 터지고 셀 수 없는 붉은 다이야 몬드 탐스러운 그 영롱함 새콤한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석류나무가 너무 자라 같이 이사를 오지 못했지만, 고향 언덕에 옮겨 심겠다고 다짐 했는데- 세든 아주머니께 석류나무를 잘 지켜달라고 단단히 당부 드렸는데- 문득 생각이 날 때면 찾아가 제법 고목이 되어가는 석류나무를 지켜보곤 하였다. 잘 가꾸지 않아 전처럼 굵은 열매는 맺지 못했지만 나는 그 석류나무를 사랑했다. 이사 온지 삼년이 지났다. 올해는 기필코 석류나무를 고향텃밭에 옮겨 심을 계획 이었다. 며칠 전 세든 아주머니로부터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저씨 4층사는 할머니가 상추, 고추, 호박을 심겠다고 저도 집에 없는 사이 석류나무를 베었답니다. 어떻게 해요?” 삼십여 년 추억을 함께한 내 사랑했던 석류를 지키지 못했다. 큰 덩치 끝으로 막 새순을 틔운 잎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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